관람기
흥미로운 전시를 발견했다. 친구와 함께 보았다. 2024년 졸업 작품을 제출한 미술 및 디자인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연형 전시. 다음 링크로 확인할 수 있다.
?, 생명선 LIFE LINE, 2024
내가 고른 작품이다.
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전기줄은 우리 일상 속에서 항상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주목받지 않는 대상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전기줄의 형태가 흥미롭게 다가왔고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있는 선들의 모양이 마치 회화 그림처럼 느껴지면서 나의 눈에 보이는 전기줄의 모양을 찍기 시작했다. ... 전기줄은 도시 속에서 전력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체 또는 혈관은 우리 몸에서 피를 순환시켜 ... 전기줄을 단순하게 보지 않고, 생명력과 연결된 하나의 상징으로 재해석하게 되었다."
나도 오래된 주택가의 전신주가 좋다. 내가 사는 곳은 송전의 지하화가 완료되어 전신주를 볼 수 없지만, 간혹 서울에 가면 압도적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시헌, 서초구의 어느 골목, 2023
23년도에 라울 뒤피 전시를 보러 갔던 날, 미술관 인근 골목을 산책하다 발견한 전신주이다. 이런 전신주는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넋을 놓고 감상하게 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무수한 통신선으로 사각화 된 모습. 새롭게 입주한 누군가가 통신선을 추가하며 늘어나는 잔해.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기록된 탑. 그렇기에 오래된 전신주에는 상상을 자극하는 신선함이 있다.
그러나 나와 달리, 저 이름 모를 작가는 통신선과 송전선들의 무더기에서 혈관을 보았다. 다분히 육체적인 상상을 통해, 전선의 연결로 손의 형상을 빚어내었다. 그러한 사유로, 굉장한 미적 충격을 받았다.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 Fingers Game, 2024
굉장히 재미있게 감상한 작품이다. 손은 사람에게 있어 굉장히 거대한 상징이다. 이 상징을 '능동'적인 기관으로 상정하고, 그것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힘에 대하여 유희했다는 작품.
"복잡다단한 도시 안에서 숨쉬고 시간을 지속시키는 과정에 대해 바라본다"는 작가의 말도 좋다. 나는 이것에서 자연스럽게 러시아워 보드게임이 떠올랐다. 손가락의 배치는 정체된 도로 위에서 꿈틀거리는 차의 모습과 닮았다. 말 그대로 복잡한 도시 속의 꿈틀거리는 손가락. 흥미로운 배치로부터, 굉장히 재미있는 이미지가 구축된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대체로 좋았다. 먼 훗날, 그들의 작품을 또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립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2025-08-19 방문 및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