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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스무 번도 넘는 겨울이 지나서야 극복한 과거의 자신이란

1. 서론

최지은 시인의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1)의 「기일」2)을 대상으로 하는 심미 비평을 수행한다.

전기적인 요소와, 다른 시와의 상호작용을 배제하고 순수한 심미비평을 수행하겠다.

3부의 소제목,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의 울림이 좋다. 그러나 ‘기일’은 어떠한가? 망자는 말이 없다. 이러한 충돌이 주는 서늘한 감각에, <기일>을 선택하였다.


1) 창비시선, 2024년 6월 3일, 초판 6쇄
2) 77~78페이지

2. 시 전문

그날은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서너달에 한번씩 아버지가 방문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복도에서 뛰어다니다 원장실 앞에서 벌을 섰고. 언니들 속임수에 넘어가 또 걸레 빠는 당번이 돼 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멀리서,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올 테니까. 그날은 나를 놀려먹는 애들마저 가엾게 느껴졌다. 토요일이라 해가 지기도 전에 저녁 배식이 시작됐고. 이른 점호를 하고. 이층 침대에 올라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창 밖에는 계속 눈이 내렸다.

나는 아버지가 조금 늦네, 생각하면서. 아예 밖으로 나가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큰길까지 걸었다. 기다림에 들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다시 걸어오면서. 제법 많은 눈이 쌓이고. 입을 벌리고 눈송이를 맛보고. 맨손으로 눈을 뭉치기도 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희고 빛나는 눈송이. 그게 내 장난감이었다. 주먹만 한 눈 뭉치를 모아두고 굴리면서. 이번에 아버지가 오면 무슨 얘길 들려주실까.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생각하면서.

눈 뭉치 속에 갖고 싶은 걸 숨겨보았다. 먼저 원장 선생님이 키우는 빨간 금붕어를 훔쳐 넣고, 은빛 머리핀, 분홍 구두, 레이스 양말, 흰색 스타킹, 생일 초대장, 초콜릿, 솜사탕…… 희고 빛나는 장난감을 쌓아올렸다. 아버지는 오지 않고. 나는 이제 눈 뭉치 속에 아버지가 타고 있는 배를 집어넣고 기차를 집어넣고 버스를 집어넣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풍납동 초록색 쪽문 두번째 집, 작은 방도 만들어 넣고. 그 안에 들어가 잠자는 시늉을 하며. 흉내만 냈을 뿐인데 잠이 오는 것 같았다. 희고 빛나는 하얀 밤 하얀 꿈. 길고 긴 밤. 스무번도 넘는 겨울이 지나도록. 하얀 밤 하얀 꿈. 지금도 아버지는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꿈속의 나는 케이크 한상자를 들고 풍납동 집 앞을 걸어갔다. 텅 빈 골목, 군데군데 불이 나간 가로등. 죽은 새끼를 입에 물고 초록색 쪽문 안으로 들어가는 고양이가 보였다. 그 문 앞에 덩그러니 서서 눈을 떴을 때, 잠들어 있는 내 방의 문이 열리고 어깨 위의 문을 털며 들어오는 젊은 아버지. 아버지와 나, 케이크 앞에 쑥스럽게 마주 앉았다. 어린 내가 보였다. 꿈속의 나는 하염없이, 창밖에 희고 빛나는 눈을 내렸다.

최지은, <기일>

3. 비평

시의 도입에서 주체는 어린 아이처럼 표현된다. 그러나 3연의 내용부터 본격적으로 꿈속의 세계임을 알리며, 주체의 나이를 확정한다. 20대의 화자가 생일 때마다 꾸었을 아버지가 오는 꿈. 그 꿈에서 보았을 갖고 싶었던 물건들. 그리고 지금도 그리운 아버지. 이 전환이 놀랍도록 매끄럽다. 십 수 년의 시간동안 느꼈을 감정을, 긴 시간 꿈마다 숨겨보았던 물건들로 표현하는 저 문장이 빛난다. 특히, 아직 주체의 나이가 확정되지 않은 3연의 앞부분에서, 일반적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러 나가서 결코 숨길 수 없는 물건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 환상성이 고개를 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독자의 마음에 이해되지 않는 빈 공간이 마련되었을 즈음,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히는 ‘스무번도 넘는 겨울’이 등장한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주체를 특정 지으며,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평할 수 있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대신 부드러운 깨달음을 전한다. 독자를 생각하여 한 박자 늦게 주체를 확정시키는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다.

시는 3연까지 일관되게 주체의 시선을 유지한다. ‘꿈속 세상’의 주체는, 꿈속이라는 자각 없이 대상(세계)을 바라본다. 그러나 4연은 다르다. 시선이 분리되어 꿈밖으로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꿈속 세상의 주체와 전혀 다른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꿈속 세상을 관찰하는 새로운 주체와 시선이 등장했다는 말이다. 이 순간 기존 주체가 대상에 포섭되며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열어젖힌다. 3연까지 쌓아올린 주체와 서사를 일순간 대상 내부로 밀어 넣으며, 조작할 수 있는 사물처럼 압축한다. 그리고 그렇게 대상화 된 꿈속 주체가 소망을 이룬다.

놀라운 기교다. 꿈속에서조차 만나리라고 상상해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을 마침내 상상해내는 순간. 그 감정의 격류가 몰아칠 순간에 적절한 거리를 형성한다. 독자가 사유할 공간을 만들어 낸다. 아버지를 마주한 꿈속 주체가 느낄 감정적 동요로부터 분리된, 시를 기술하는 화자로서의 새로운 주체를 4연에 형성해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주체를 분리해내지 않았다면, 독자는 직접적으로 감정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담담한 어조로 슬픔을 고백하는 기교. 매우 인상 깊다.


한편, 적절한 환상성 동원의 예시로도 손색이 없다.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특수한 그리움이 아닌가? 주체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던 그날의 꿈을 20년이 넘도록 꾸고 있을 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주체는 꿈속에서조차 아버지가 돌아오리라 믿지 못한다. 그의 깊은 무의식마저, 아버지가 이미 자신을 버렸으리라 납득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런 ‘특수한 의미’를 표현하려다 보면 생기는 필연적인 어긋남이, 꿈을 매개로 한 환상일 것이다. 그것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한 박자 늦은 주체 형성에 기능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환상을 통해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의미가 독자에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주체는 과거를 극복해 낸 것이 아닌가? 그 감동이, 적어도 내게는 와 닿았다. 환상의 힘으로. ( * )


원고 작성일: 2025-09-16

게시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