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n

서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방문했다. 친구와 함께. 론 뮤익(Ron Mueck)의 전시와, '기울인 몸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의 전시를 보았다. 론 뮤익의 전시는 매우 좋았다. '기울인 몸들'은 대체로 아쉬웠고,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전반적으로 즐거웠다.

특히 론 뮤익의 전시물들은, 정적인 조형물이 전달할 수 없는, 다분히 인간적인 비언어적 표현을 갖춘 작품들이다. 마치 잘 훈련된 연기자가 행위예술을 하는 듯 한 생동감. 그것이 론 뮤익의 작품이 주는 초현실적인,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느낌의 근원이리라.

'기울인 몸들'은 주제가 지닌 한계로 인하여, 공감이 어려웠다고 평할 수 있다. 공감은 경험으로부터만 우러나는데, 내가 그들의 아픔과 불편과 극복을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참여적인 의미는 충만하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시간의 문제로 전시를 모두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을 몇 감상할 수 있었다. 추후 시간이 된다면 다시 방문하여 천천히 살펴보고 싶다.


현재 감상기에는, 일단 론 뮤익의 전시에 대한 내용만 기록하겠다. 추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를 다시 감상하러 갔을 때, 해당 전시에 대한 기록을 별도로 남기겠다.

본론

Mask II

Ron Mueck, Mask II, 2002

Ron Mueck, Mask II, 2002

전시장의 입구에 자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식상하지만, 표현 양식은 충격적이다. 인간의 다층적인 페르소나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의 속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 가면의 공허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사실적인 표현과, 압도적인 크기.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In Bed

Ron Mueck, In Bed, 2005

이 작품을 천천히 관찰하면,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작품의 세부는 극도로 사실적이면서도 그 비례가 무너져 있다. 신체의 각 부위가 이상한 스케일을 지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작품을 환상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요소가 아닌가? 이질감의 정체는 초현실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신체묘사의 충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굳이 문학에 비유하자면, 강한 환상성을 지니는 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바라보는 대상은 무엇인가? 분명히 무언가를 바라보는데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상술한 이질감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녀가 바라보는 현실 바깥의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리라.


Woman with Shopping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이 표현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앞서 서론에 기술한 '다분히 인간적인 비언어적 표현'을 갖추어 탁월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만 바라보는 아이. 삶의 만성적인 피로와 걱정과 불안이 느껴지는 공허한 어머니의 시선. 어머니의 양손에 가득한 공산품.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가정의 불안으로 점철된 삶을 보여주는 작품. 그러나 그 보편적인 내용이, 마치 실제 인간이 서 있는 듯 한 세심한 표현과 만나 우리의 마음을 두들긴다.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막다른 길에 놓이게 되었는가? 전시를 보던 그 순간보다,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작품이다. 계속 생각하게끔 한다...


Mass

처음 보았을 때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Ron Mueck, Mass, 2016-2017

Ron Mueck, Mass, 2016-2017

해골은 정말로 큰 상징이다. 무수한 의미를 내포하는 거대한 상징. 이런 상징은 예술 작품에서 다루기 어렵고, 성공적으로 다뤄낼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름에 걸맞은 규모로서 해골의 상징을 억누른다. 상징이 작품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상징을 압도하고 의미를 재배열 한다. 해골은 상징의 영역에서 벗어나, 작품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발상이 탁월하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것은, 이것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모호하다는 말이다. 이름이 굳이 'Mass'일 필요가 없었으리라. 론 뮤익은 무엇에 이끌려 이토록 많은 해골을 쌓아 올린 것인가? 정말로 궁금하나, 작품에서 그것을 해석해 낼 힌트가 전무하다. 그렇다면 작품의 제목이 해골의 의미를 특정하고, 관객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시킬 수 있지 않은가? (규모에서 오는 신선한 감각이 탁월한 예술 경험을 준다는 것은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Mass'에 아주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목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의 해골을, 타자의 시선으로 보고 싶다. 무수한 시선. 그 시선을 보내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 죽어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이 작품이 출발한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해골을 무엇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Dark Place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러나 관람 가능한 시간이 10초 남짓이었다. 아주 큰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작품을 올바로 감상하는데 3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둠 속에서 눈이 1차 암적응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분이기 때문이다. 암적응을 마치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얼굴을 바라보는 감각을 음미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아쉽다!!

Ron Mueck, Dark Place, 2018. [source link]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하여 사진을 찍지 않았다. 줄이 너무 길고 관람은 짧다. 사진을 찍는데 허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서 게시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관음의 본능이 있다. 우리는 어둠 속에 들어가, 우리의 등 뒤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는 얼굴을 바라본다. 빛의 양은 적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우리(관람객)의 얼굴에는 빛이 전혀 비치지 않을 것이고, 작품의 얼굴에는 소량이지만 더 많은 빛이 비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는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이 모든 생각(감각)은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기에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이상하고도 서늘한 감각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골적인 관음에서 기인하는 이상야릇한 감각.

그리하여 작품 설명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두운 공간을 공유하며 대상의 감정 상태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니. 전혀 잘못되었다. 이것은 공유가 아니다. 빛이 관찰자의 등 뒤에서 들어오는데, 이것이 공유일 수 있겠는가? 또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지켜 볼 때 대상자(관찰당하는 사람)의 감정은 중요치 않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관음하게 된 사유 뿐. 관찰자의 욕망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의 감정에 몰입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론 뮤익의 다른 작품에서는 대상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몰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총평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Dark Place'의 관찰 가능한 시간이 10초 남짓 뿐이었다는 것 빼고는 모두 좋았다. 정말로 신선한 시도. 이런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추후 론 뮤익의 다른 전시가 열린다면, 내가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한 다른 작품을 보기 위해, 기꺼이 다시 한 번 전시장에 갈 것이다.

2025-05-23 방문

2025-05-24 관람기 작성